"사랑해요", "한 번만 만나주세요." 매일 아침 수백 통의 구애 메시지를 받던 베트남의 한 패션 모델. 동양적인 이목구비에 화려한 라이프스타일로 5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이 'SNS 스타'가 사실은 실존하지 않는 인공지능(AI) 그래픽 덩어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월 매출 1600만 원, 제작 시간 10분”… 인간 모델 대체한 ‘가성비 혁명’
현지 유력 매체 VN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은 가상 모델 ‘즈엉 투이 린(Duong Thuy Linh)’이다. 그녀의 정체는 하노이에 거주하는 23세 청년 꽝동 씨가 생성형 AI 도구와 영상 생성 기술을 결합해 창조해낸 '디지털 피조물'이었다.
꽝동 씨는 과거 의류 매장을 운영하며 인간 모델 섭외 비용과 일정 조율, 불확실한 광고 효과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가 찾은 돌파구는 AI였다. 그는 여러 생성형 AI 툴을 정교하게 조합해 실제 의류의 원단 질감, 늘어짐 정도까지 95% 이상 흡사하게 구현해냈다.
성과는 폭발적이었다. 꽝동 씨는 "AI 모델 도입 첫 달에만 3억 동(약 16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혁신적인 것은 생산성이다. 과거 며칠씩 걸리던 화보 촬영과 콘텐츠 제작 시간이 단 5~10분으로 단축됐다. 덕분에 그는 하루 15~20개의 영상을 쏟아내며 알고리즘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인간 모델은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인 '가성비'다.
스페인 ‘아이타나’ 잇는 AI 열풍… “불평 없고 늙지 않는 완벽한 직원”
이러한 현상은 베트남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1년 사이 전 세계 패션·마케팅 업계는 '가상 인간(Virtual Human)' 열풍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스페인의 AI 모델 ‘아이타나 로페즈(Aitana Lopez)’는 월 1만 유로(약 14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녀 역시 즈엉 투이 린처럼 실존 인물로 착각한 유명 인사들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한국의 ‘로지’, 미국의 ‘릴 미켈라’ 등도 이미 거대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AI 모델은 나이를 먹지 않고,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으며,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한다는 점에서 '가장 완벽한 직원'으로 평가받는다. 꽝동 씨의 성공 사례는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가 개인 사업자 레벨까지 내려왔음을 시사한다.
“이거 사기 아닌가요?”… 깊어지는 ‘딥페이크 포비아’와 윤리적 딜레마
하지만 기술의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법.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 모델의 범람은 소비자와의 신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즈엉 투이 린의 계정에는 여전히 그녀가 가상 인물임을 모르는 수많은 이용자의 문의가 빗발친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낚시성 광고'라고 비판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옷 핏(Fit)을 확인하고 싶은데 모델이 가짜면 어떻게 믿느냐"며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나 무보정 영상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 확산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AI 생성물'임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워터마크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인간의 감정마저 알고리즘의 상술에 놀아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베트남의 가상 미녀 사건은 AI 시대, 우리가 마주한 '진짜 같은 가짜'의 서늘한 예고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