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1981년 2월, 서울의 어느 국민학교 운동장. 스피커에서는 졸업식 노래가 찢어질 듯 울려 퍼지고, 운동장은 온통 희뿌연 먼지와 꽃다발, 그리고 짜장면 먹으러 갈 생각에 들뜬 아이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왁자지껄한 틈바구니 속에서 저는 혼자였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하나둘 교문을 빠져나갈 때, 저도 조용히 책가방을 챙겨 운동장을 나왔습니다. 꽃다발도, 사진 한 장도 없이 말이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유독 찬바람이 불더군요. 그런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저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아이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터덜터덜 걷는 그 아이의 뒷모습이 어찌나 제 모습 같던지... 어린 마음에도 묘한 동질감이 들더군요.
'너도... 아무도 안 오셨구나.'
사실 저희 집이 가난하거나 제가 구박받고 자란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 시절 흔하디흔한 '보통 가정'이었죠. 굳이 따지자면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귀한 아들 사이에 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딸이었을까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언니 졸업식 땐 온 가족이 출동했고, 남동생 졸업식 날엔 엄마가 아침부터 미용실을 다녀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고추 달고 나온 아들"은 참 유세였죠. 우리 엄마도 남동생이라면 물고 빨고, 아주 금쪽같이 여기셨으니까요.
'바쁘시니까 그렇겠지.' 스스로를 달래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텅 비어있을 줄 알았던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엄마였습니다. 심지어 일을 나가신 것도 아니었어요. 이모님(엄마의 사촌 언니)까지 놀러 와 계시더군요.
순간, 어린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안 계셨으면, 차라리 바쁘셨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서 수다를 떨 시간은 있으면서 내 졸업식에 올 시간은 없으셨던 걸까.
그때, 저를 물끄러미 보던 이모님이 혀를 차며 한마디 건네셨습니다.
"졸업식에 아무도 못 와서 섭섭했지?"
그 한마디가 왜 그리 콕 박히던지요. 섭섭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텅 빈 운동장에 홀로 서 있던 열세 살의 제가 떠올라 목구멍이 뜨거워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도 이제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 든 엄마가 되었습니다. 제 아이들을 키워보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학예회에서 율동 하나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데... 그때 그 시절 부모님들은 왜 그리 딸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셨을까요.
아들이 뭐라고, 딸은 뭐라고. 그 차별 아닌 차별이, 무관심 아닌 무관심이 평생의 서운함으로 남을 줄 그때 어른들은 아셨을까요?
지금이라도 타임머신이 있다면 1981년의 그 골목길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앞서 걷던 저에게, 그리고 뒤에서 걸어오던 그 남자아이에게 커다란 꽃다발 하나씩 안겨주며 말해주고 싶네요.
"너희들도 참 귀한 아이들이란다. 졸업 정말 축하해."
